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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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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itheearthling 2021. 7. 12.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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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몇 개의 "아무튼"시리즈를 읽었다. 지금까지 읽어 본 바, 뒤의 ㅇㅇㅇ에 대한 상당한 고찰과 정보제공 같은게 있지는 않았다는게 나의 감상이다.

그보다는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저자가 ㅇㅇㅇ을 사랑하며 겪은 여러 에피소드를 엮은 일에 가깝다. 내가 ㅇㅇㅇ에 관심이 없다면 '이 것이 나에게 이런 세상을 보여줄 수도 있다니!' 하며 새로운 세상알게되고, 나도 그것을 사랑한다면 같은 것을 사랑하는 존재와 수다를 떠는 기분으로 책을 읽게 된다.

그러니까 나는 이 책을, 내가 사랑하는 요조언니와 내가 정말 사랑하는 떡볶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기분으로 이 책을 읽었다.

정작 밑줄 친 문장은 라일락 꽃 향기를 맡은 이야기에 관한 문장이었는데, 어쨌든 떡볶이 책에 떡볶이만이 가슴에 남으리란 법은 없는 것이다. 빨갛고 쫀득한 이야기가 지속되다가 예상치 못한 보랏빛 향기가 침투하게 되었을 때의 인상이 컸다고 할까.

나무의 컨디션과, 그날의 바람과 온도, 그리고 하필 그 순간의 내 호흡이 맞아떨어지는 아주 찰나에 좌우된다.



어쨌든. 책을 읽으며 나도 몇 군데의 떡볶이집이 생각났다. 나에게 최초의 떡볶이집이라고 할 수 있는 빨간색 포장마차와 초록색 포장마차. 두 포장마차가 나란히 있었는데 그렇게 인구가 많지 않은 <리>단위의 동네에서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두 분도 미도분식과 영스넥같은 관계셨겠지?

그리고 내가 취학 아동이 되고 나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곳은 학교앞에 여러 떡볶이 집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피아노 학원이나 보습학원을 가기 전에 꼭 들렀는데, 저마다의 주력메뉴가 달라 질리는 법이 없었다.
교문앞 문방구 옆 떡볶이집은 라면볶이가 맛있었고, 교문 옆 떡볶이집은 계란볶이가 맛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계란 노른자와 떡볶이 국물의 조합이 환상적이라는 것을 배웠는데, 이후에 나도 계란볶이를 먹는 법을 여럿에게 사사했다. 학교 후문 떡볶이집은 짜장떡볶이가 맛있었는데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학교정문과 후문의 거리차이는 꽤 큰 것이라 왠지 자주 찾지 않았다.

중학생 때는 <천냥백화점>이라고 하는 중학교 앞 떡볶이 가게가 있었다. 왜인지 주인이 매번 바뀌었는데 중학생들이 하교 하고 난 뒤에는 찾는 이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본다. 이 곳의 명물은 순대볶이 혹은 간볶이였다. 이 전까지 나는 순대 내장이 퍽퍽해서 잘 먹지 않았는데 떡볶이 몇 덩이와 그 국물에 순대내장을 섞어 먹으면 탄수화물과 단백질의 조화가 완벽했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는 후문에 <무지개분식>이라고 하는 곳이 있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떡볶이 집에서 떡볶이를 먹다가 쥐를 봐 버린 후로 어쩐지 갈 수가 없었다.

대학생 때는 지금은 없어진 <땡초분식>이 내 최애 떡볶이 집이었는데, 사실 2010연대 초반은 바야흐로 파닭의 해였기 때문에 파닭과 지코바에게 홀려서 떡볶이를 멀리하다 대학교 3학년때 쯤이 되어서야 떡볶이집을 다시 찾았... 아니다. 친구들이 '야 쟤한테는 점심에 뭐 먹을거냐고 물어보지마. 무조건 떡볶이라고 해.' 라고 했던 기억이 있는 것으로 봐서 떡볶이를 멀리한 것이 아니라 땡초분식을 내가 3학년 때 알게되었던 것 같다. 어쨌든 그곳은 즉석 떡볶이, 기름떡볶이, 국물 떡볶이, 쌀떡볶이, 밀떡볶이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취급하는 곳이었는데 4테이블 남짓에 재료를 많이 준비해두지 않으시는 곳이라 원하는 메뉴는 품절되는 경우가 많았고 대개는 되는 대로 먹었던 기억이다. (그럼에도 모든 메뉴가 맛있었다.)

그리고는 바야흐로 프랜차이즈 떡볶이의 시대가 되었다.... 16000원짜리 떡볶이라도 시켰다간 3일 내내 그 떡볶이를 데펴먹어야 하기 때문에.. 결심을 하고 떡볶이를 먹어야 한다. 그래서 요즘은 밀키트 떡볶이 (사과떡볶이)에 반해버려서 인터넷으로는 두 달이 걸리는 밀키트 가게가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것에 감사하며 휴일 아침에 전화를 건다. "안녕하세요? 오늘 취소분 있으면 연락 주실 수 있을까요...?"

요조언니에게 정말 부러운 것은 (영스넥)과의 추억이다. 나의 경우에는 위에 작성한 대학생 까지 나의 인생의 떡볶이들 중에 지금까지 영업을 하는 가게가 한 곳도 없다. 요즘은 너무 많은 가게가 생기고 사라져서 매번 떡볶이 유목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사온 집에 정을 붙었던 프랜차이즈 (이웃집 소녀 떡볶이)를 또 떠나보내게됐고, 사과떡볶이에 정을 붙이기 시작했지만.. 새로운 떡볶이집을 찾아 정을 붙이는건 쉬운일이 아니다. 그 장르를 다 좋아할지라도 <최애>는 다른 얘기가 아닌가! 영원한 최애는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그래도 땡초분식이 그랬고 이소떡이 그랬듯 사과떡볶이도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너무 슬프다.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두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멋진 음식들로 가득한 추억들을 만들어야겠다. 요조언니처럼.

아무튼, 떡볶이에 대한 나의 이야기였다.